가장 이질적인 극장판
필름 레드는 원피스 극장판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극장판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실제로 원작자인 오다 에이치로 작가는 일부러 이런 이질성을 원하고 원피스와 접전이 매우 적은 감독을 픽 했다고 한다.
루피는 언제나 극장판의 보스를 시원하게 때려 부쉈지만 필름 레드에서는 빌런 포지션에 있는 우타를 단 한 대도 때리지 않는다. 자기 친할아버지는 때려도 소꿉친구이자 유사 가족을 때릴 수는 없었나 보다.
원피스의 골수팬들이라면 알겠지만 극 중 밀짚모자는 '해적왕'이나 '자유' 등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번 극장판에서는 그런 의미보다는 '부성애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질적인 포인트이다.
게다가 빌런이 정서적인 문제가 심각한 인물이라는 점, 사실상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 역시 대단히 특이하다. 물론 자살이라기보다는 희생이나 사죄처럼 묘사되기는 하지만, 애초에 정말 자살을 계획한 빌런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소년만화 치고는 파격적이다.
줄거리
세계 최고 인기 가수 우타는 엘레지아 섬에서 첫 콘서트를 열며 영화가 시작된다. 관중들에게 '오랜만이다'라는 외치는 대사는 마치 코로나 시대를 뚫고 온 실제 극장의 관중들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우타는 단순한 인기 가수가 아닌 대해적 샹크스의 딸이라는 사실이 콘서트를 보러 온 주인공 루피에 의해 밝혀진다.
루피와 우타는 서로의 첫 친구이자 유사 남매 같은 사이였기에 오랜 재회에 크게 기뻐하지만, 루피는 우타가 어딘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이때부터 우타는 본색을 드러낸다.
사실 그녀는 죄책감, 외로움과 그리움 등으로 정신이 병든 상태였고 콘서트를 연 목적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세계 사람들을 고통이 없는 꿈속의 환상세계로 끌고 들어가려는 것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그녀는 폐허가 된 섬에서 고립되어 살면서 바깥세상이 그저 고통으로만 가득한 곳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인간은 노동을 하고 고통이 있어야 성장하고 즐거움도 얻을 수 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러 가야 한다는 관중에게 그런 힘든 일을 뭐 하려 하느냐고 반문한다.
세계정부는 그녀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어 군을 움직이고, 영화의 후반부에는 드디어 그녀의 양아버지인 샹크스가 직접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등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너무 긴 공백, 서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쉽게 복구하기가 어려웠고 (그 이유는 영화에서 확인!) 우타는 이제야 찾아왔냐며 오히려 격분한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타는 자신의 죄를 깨닮고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이 환상 속 세상으로 끌고 간 인간들을 현실로 되돌려 놓고 숨을 거두게 된다.
유사가족의 끈끈함
혹시 오다 작가는 가족제도에 회의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주인공인 루피는 친가족에게는 관심이 없거나 애정이 별로 없다. 반면 양아버지 같은 존재인 샹크스와 의형제들에게는 가족 같은 정을 느낀다.
밀짚모자는 부모의 사랑을 상징하는 아이템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부모관계는 한 번도 없다. 로저는 천애고아 신세가 된 갓난아기였던 샹크스를 부모처럼 키우고 그에게 밀짚모자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 모자는 다시 샹크스의 양아들 같은 존재인 루피에게 간다. 우타가 밀짚모자를 찢어버린 이유 역시 자기 자신이 아닌 루피가 샹크스의 자식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받아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장판에서는 분량상 다루지 못해 TV 애니메이션을 통해 푼 이야기에서는 우타가 은근히 루피에게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한 묘사가 나온다) 그런데 정작 우타 본인도 친자가 아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의 사랑은 진짜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타는 루피에게 밀짚모자를 다시 씌워주는데 (이것이 루피의 꿈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성적인 감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둘은 유사남매에 가까웠기에 어찌 보면 누이가 남자 형제를 진정으로 인정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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