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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박스 "영원한 경계를 하며 사는 삶이란"

by 조르노 202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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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mpawards

 

줄거리

 이 영화는 원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로 세상은 사실상 멸망한 세상에서 멜로리 헤이즈(산드라 블록 분)와 그 자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무엇'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리고 환청을 들으며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무엇'을 보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을 감지할 수 있는 새들의 힘을 빌리는 것 정도이다. 

 이런 세계관에서는 모두가 힘들겠지만 멜로리는 유독 고통스럽다. 임신을 한 상태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언니는 '그것'을 보고 미쳐 트럭에 치여 사망한다. 멜로리는 다행히도 몇몇 사람들의 호의 덕분에 가정집으로 몸을 피하게 된다. '그것'을 보지 않기 위해 모든 창문을 신문지로 가리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머릿수는 많은데 집안에 식량은 금방 바닥났고, '그것'을 직접 보지 않더라도,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자살에 이르게 하며, '그것'을 보고 나서 미친 사람은 혼자 죽는 게 아니라 마치 자살테러라도 하듯이 멀쩡한 사람들 까지 공격한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삭의 임산부인 올림피아, 이미 '그것'에 당한 게리까지 집에 들어오게 되고, 게리는 올림피아의 출산 도중 신문지를 뜯어내며 모두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멜로리는 다른 생존자 중 한 명인 믿음직스러운 청년 톰과 연인이 되고, 함께 하던 생존자들이 몰살당한 후에도 자신의 아이 '보이'와 올리비아의 딸로 추정되는 '걸'을 함께 키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톰 마저도 멜로리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그것'에 당해  목숨을 잃게 된다. 

 멜로리와 아이들은 시각장애인 학교에 당도하게 되다. 역설적으로 재앙 이전에는 가장 약자였던 그들이 가장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게다가 사방에 있는 새들이 언제나 '그것'의 접근을 알려줄 것이니, 사실상 가장 안전한 장소였고, 멜로리는 이제야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는듯히 아이들에게 이름을 짓어준다.

 

작명의 의의

 멜로리는 자신의 친 아들로 추정되는 아이를 '보이', 생존자들 중 그나마 가장 친했던 올림피아의 딸로 추정되는 아이를 그저 '걸'로 불렀다. 그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가 없는 잔인한 세계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름을 짓어주는 것이 오히려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멜로리는 톰과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친 아들인 보이에게 조차도 딱히 살갑지 않다. 단순히 상황이 각박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드디어 최소한의 안식을 얻게 되자 그녀는 비로소 아이들에게 이름을 준다. 아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이자 아이들의 실질적인 아버지였던 '톰'의 이름을, 딸에게는 친모로 추측되는 그녀의 (비록 짧은 시기 동안이었지만) 절친이었던 '올림피아'의 이름을 준다. 

 

영원한 경계

 사실 멜로리와 아이들은 그저 조금 더 크고 안전한 둥지 안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잔인하고 슬프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주제의식인 듯하다. 

 멜로리 보다 상황이 훨씬 낫기는 하지만 우리도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돌아오면 안락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 마치 '그것'에 언제 당하게 될지 모르는 멜로리와 그 아이들처럼 말이다. 

 우리 역시 살아있는 한 영원한 경계를 하며 긴장을 하고 살 수밖에 없다. 돈, 건강, 인간관계, 커리어 모든 측면에서 말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언제 암에 걸릴지 모르고, 건강이 좋아도 경제 위기가 오면 집에서 쫏겨날지도 모르고, 나의 애인이 내일 바람이 날지도 모른다. 이게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우리를 즉각적으로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뿐이다. 심지어 교통사고 같은 것은 오히려 더 즉각적으로 우리의 삶을 앗아갈 수도 있다. 

 영화 속 '그것' (혹은 악령)은 그 형태가 명확하게 존재하지가 않는데, 어쩌면 그 이유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위기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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